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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 드라마 심리분석9] 부모와 사춘기 자녀의 문제점(집착심리와 동일시)

느루독서심리연구센터(010-2788-3025) 2020. 5. 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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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에서 김희애와 함께 살던 반려자의 사별로 상실감에 술로 지내다 강원도 요양 병원장으로 가 있는 방충선(마강석 역할)과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유 심리와 집착에 대한 심리'를 드러내는 대화라서 분석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둘의 대화 먼저 보고 가겠습니다. 

 

김희애: "왜 잘해보려는 일마다 망쳐버리는 걸까요. 내가족, 남편, 자식 전부다. 지키고 싶었던 것들마다 전부 다 놓쳤어요."

방충선: "지선생한테 지킨다는 건 뭔가. 집착은 독이야. 그건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도 마찬가지고."

김희애: "옆에 두겠다는 욕심은 이미 내려놨어요. 아빠랑 살겠다는 것도 이제 받아들였고요. 제가 못견디겠는건 아이가 저를 미워한다는 거예요. 그 마음만 돌릴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는데. 방법이 없겠죠?

방충선: "상처 준 주제에 이해까지 바라면 너무 큰 욕심 아닌가. 미움이든 원망이든 준영이 마음 존중해줘. 하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김희애: "선생님은 시간이 해결해주던가요. 시간이 지나도 고통은 고통인거죠. 선생님도 아시잖아." 

방충선: "인생이 뭐 언제 달콤하기만 한가. 그냥저냥 버티면서 사는거지. 그러다 보면 가끔 볕 들 날이 있는 거고. 그렇게 시간이 가는 거야." 

김희애: "그렇게 버티기엔 지쳤어요."

 

 

보통 부모와 자녀의 문제가 생기는 가장 많은 경우는 자녀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시작됩니다. 부모로부터 보호와 양육을 받던 자녀가 이제 사춘기를 거치면서 독립과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부모의 입장에서는 '나 없으면 이 아이는 죽는다'는 생각이 마음 깊숙이 뿌리내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엄마로부터 태어납니다. 특히 인간은 엄마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아이에 대한 부모의 머릿속에는 타인들의 개입을 경계심리도 형성되어서 감시를 하게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자녀가 신체적 독립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독립을 원할 때, 부모의 경우 자꾸 독립하려고 하려는 자녀로부터 분리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1957년에 '인간행동의 모델(Models of Man)'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가 바로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입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결정을 할 때 자신의 환경과 상황(setting)이라는 제한 속에서만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익숙해져 버렸고 친숙해져 버린 환경에 감각이 둔해져 버립니다. 둔해져 버린 감각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1978년 미국 인지과학자인 허벌트 알렉산더 사이먼(Herbert Alexander Simon) 교수는 체스(chess) 실험을 통해 이런 익숙해져버린 환경에 판단이 둔해지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우선 체스 고수(master)와 초보자(novice)를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눴습니다. 이 두 그룹에게 체스 규칙과는 완전히 다른 엉터리 게임을 보여준 뒤 그 과정을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실험결과, 체스 고수들은 기억을 잘하지 못했고, 반대로 체스 초보자들은 기억을 잘했습니다. 이 실험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너무 과도하게 익숙해져 버린 삶의 흐름 때문에 가치관이 굳어져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생각과 행동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에 사춘기가 되어서 본인의 생각이 자라고 독립된 행동에 대해 부모는 자신을 떠나려한다는 느낌으로 '분리불안'을 느껴서 판단도 흐려지고 외로움에 우울감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심리학에는 동일시(identification)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정신분석 창시자인 프로이트가 사용한 용어입니다. 이 동일시라는 말은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여러 가지 측면을 닮아가는 정신 과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가족이라는 환경 속에서 자녀가 생각하는 방식, 느끼는 감정, 자주하는 행동의 모습을 부모는 자신의 모습으로 인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동일시입니다. TV를 보면서 드라마의 어린아이의 행동을 보다가 실제 자녀의 모습과 비슷한 면이 보이면 놀라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하면서 빠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일시입니다.

 

익숙한 행동을 하면 무의식적인 수용을 하고, 낯선 말과 행동을 하면 비판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게 됩니다. 

 

자녀가 여전히 이전에 어린 아이였던 모습으로 주는 대로 받고 하라는 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심리는 '집착'입니다. 자녀가 늘 그렇게 변하지 않고 말 잘 듣는 자녀의 모습을 유지하길 원하는 것은 집착 그 자체입니다. 집착은 독입니다. 그런 사랑은 치명적이고 잔혹한 사랑이고 삶의 시계가 멈추기만을 원하는 집착인 것입니다. 

 

 

부부의 세계에서 김희애는 어려서 부모를 한 번의 사고로 잃어버린 상실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자기 자녀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을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부모처럼 되지 않기 위해 반대로 자녀에게 너무 붙어서 떨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자녀가 그저 반듯하고 밝기만을 원한다는 것은 반대로 부모의 그늘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를 너무 사랑해서 욕망하게 되면 유치한 말과 행동이 과도해집니다.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자녀도 건강하게 독립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심리적 거리가 없이 붙어있다 보면 서로의 거친 말 한마디와 예상치 못한 행동 하나에 휘청거릴 만큼 큰 파문이 되어버립니다.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꼭 잃을 것만 같아 망설여지고 사랑과 욕망을 정확히 구분 짓지 못해 힘들어하면서 부모는 자녀와의 간격이 너무 가깝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지금이라도 자녀가 숨쉴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맛보며 성장할 수 있도록 다가가지 말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특히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양육의 옷을 입은 사랑은 벗어버리고, 존중의 옷과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기다릴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이재연 교육학 박사(상담전공) <현) 고려대학교 대학원 아동언어코칭전공 강의전담교수 / 현) (사)한국청소년지도학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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